할 짓거리 없어서 본인 인생이나 한번 끄적여봄 [5]

12 Klklkl | 2019-09-21 19:59:59 | 조회 : 213 | 추천 : -


원래 만화로 그려보려고 했는데 군머라 폰밖에 없다 진부할 수도 있는데 요약 이런거 없으니까 읽기 싫으면 나가도 됨

본인은 아기때 아빠가 도박에 빠져서 집안이 망해버렸다. 참다못한 엄마가 나랑 형 둘이 데리고 집을 나왔다 엄마는 일하고 집안일까지 하느라 집에 오면 항상 잠만 잤다. 엄마를 원망하는건 아닌데 난 애기때 엄마로부터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은건 아닌것 같다. 난 집에서도 늘 혼자였거든. 형도 나이가 8살차이라 자기 친구들하고 놀았지 나랑 놀지는 않았음. 그마저도 고딩되니까 기숙사간다고 일주일에 한두번 집에 왔음. 

그런데 엄마가 또 젊을때 못해본 대학교 졸업을  하고 싶다고 밤에도 야간 수업을 받으러 감. 당연히 난 밤늦게까지 집에 혼자 있어야 했고 다 식은 저녁을 깨작거리며 엄마를 기다려야 했음. 친구들이랑 술먹는다고 집에 늦게 들어올 때면 난 울면서 엄마를 기다려야 했고 당연히 전화도 안받았음.

이때부터 내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함. 불량아들이랑 어울리진 않았는데 정서적으로 다른 애들에 비해서 비성숙해  있었다고 함(그때 나 가르친 초딩담임 피셜로는)  당연히 중학교  들어가서도 애들이랑 못지냈고 이유없이 불안을 느끼고 틱장애도 있었다고 함.

 선생들도 나 문제아라고 생각하고 학폭당해도 내가 문제라고 느끼고 가해자를 두둔함. 이건 엄마도 마찬가지었는데 내가 자꾸 학교 적응도 못하고 모자란 애처럼 구니까 학폭을 당해도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생각하드라. 이후로 뭔 문제가 생기면 엄마한테 얘기를 안했음. 

진짜 주위어른 애들 가족 할 것없이 다 나를 싫어했음. 근데 유일하게 내 이야기 들어주고 나 보듬어준사람이 초6담임이었음. 그래도 이사람덕에 초6때 조금 행복하더라. 

중학교와서 나는 그 사람이 나를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뭐가 있을까 하다가 보통 스승의날이 중간고사 끝나고 있잖아. 그래서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그 쌤을 찾아가면 어떨까 싶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함. 진짜 그때 죽어라 공부했음. 그리고 시험을 봤는데 전교1등이 나온거임 ㅋㅋㅋㅋㅋㅋ참고로 이전에 난 반 10등안에도 못들었다 그때 엄마가 내 성적표를 보고 웃던게 아직도 기억남. 그 담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때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함.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필기도 열심히 하고. 내가 이렇게 하니까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던 어른들이 나를 다르게 봤거든. 물론 여전히 비성숙하게 굴고 틱장애도 안고쳐졌음. 그래도 개의치 않았음. 애들이 나보고 공부만 하는 병신이라고 뒷담까도 개의치 않았음. 내 성적이 나를 증명해줬고 나를 승자로 만들어줬으니까.

 고1때 까지 같이 밥 먹을 친구하나 없었음. 그런데 그런걸 신경 안썼음. 그 당시 내 머릿속은 시험이라는 단어외에는 들어있지 않았거든. 학교에서 왕따당해도 나한테 ㅈ같이 구는 애들이 있어도 시험에서 좋은 성적  받으니까 다 용서가 되더라. 그래도 나도 사람이라 애들이 나 싫어하는게 마음에 좀 걸리더라 그래서 고2때부터 외모관리도 좀 하고 애들이랑 좀 어울리려고도 했음. 그렇니까 친구가 생기긴 하더라 여전히 병신취급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고2때 동아리 기장도 했었는데 사실상 나혼자 다 했음. 사회성제로였던 내가 그런 인싸짓을 어캐 하겠냐 ㅋㅋㅋㅋ 후배들도 내 소문 대강 아니까 병신같이 보고 나 고3되니까 다 나가드라 ㅅㅂ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상관안했음. 어쨋든 난 그 동아리 활동으로 명문대 갔으니까. 

그래도 고3때는 애들이랑 좀 잘 어울렸음. 그때는 내가 공부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거든. 그래서 애들이랑 놀고 싶었지. 물론 그때도 인성 사회성 눈치제로라 뒤에서 나에 대한 안좋은 소문 많았음. 그때 우리반에 양아치 ㅈㄴ 많았었는데 그 새끼들이 그때 날 왜 안거드렸는지 모르겠음.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명문대 합격하고 고등학교 졸업함.

근데 진짜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던건 대학교때임. 
내가 고딩때 사회성 눈치 제로였다고 했잖아 이건 대학교때도 마찬가지였음. 하긴 3년동안 공부만 처하던 새끼가 무슨 사회성이 있겠냐. 주제도 모르고 동아리mt가고 오티가서 술쳐먹고  사고치고(그 당시엔 내 주량이랑 주사도 몰랐음) 선배들이 친구처럼 구니까 나도 친구처럼 굴어도 되는갑다 싶어서 친구처럼  굴었는게 그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ㅈㄴ ㅈ같았나봐. 당연히 과에서 언플당하고 매장당함. 내 과 동기가 알려주더라 너 매장당했다고.....그때 충격먹고 수업도 안나갔음. 가족들은 성적 개판으로 받아오니 난리 났고 내 정신상태는 과에서 일로 피폐해졌었음. 2학기 휴학하려고 했는데 형이 뭔 휴학이냐면서 성적 회복하라고 다시 가라고 함.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내가 고1때 알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놈이랑은 그렇게 안친했는데 같은 피방을 다니면서 친해짐. 어쩌다가 그 애랑 술을 먹게 됬는데 그때 과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음. 그 애가 조용히 듣더니만 나에게 괜찮다고 위로해주드라. 그때 나에게 그 괜찮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위안이었음. 근데 그 친구가 자기도 서울에서 음악공부 한번 해보고 싶다고 자취 같이 하는게 어떻냐 하드라고.
그래서 난 다시 2학기를 다녀보기로 했어.

친구랑 둘이서 자취를 했는데 처음에는 진짜 재밌었음. 새로운 가족이 생긴 기분이었거든. 학과 일로  가족이랑도 사이 나빠져서 명절때도 안내려가고 그 애랑만 같이 있었음. 둘이서 술도 먹고 외식도 하고 피방도 가고 집안일도 하고 추억도 정말 많았음. 근데 이 새끼가 문제가 있었음. 집안이 가난해서 돈이 없는 거임. 그럼 관리를 해야되는데 그것도 안했음. 피방간다고 생각없이 다 꼬라박는거야. 나중에는 돈이 없다고 나한테 좀 빌려달라드라 다음달에 갚겠다고 난 그게 ㅈㄴ ㅈ같았음. 알바를 구하라고 해도 안구하고 하루종일 쳐자고 돈도 없어서 라면만 쳐먹고 불쌍해서 내가 밥 사준적도 많았음. 당연히 방보증금도 내가 다 냈음. 근데 그것만 문제였으면 신경안썼음. 방 정리 안하고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자고 있는데 인방봐야한다고 폰 시끄럽게 틀고 있고 무슨 폐인새끼같이 사는데 그래도 안내쫓고 계속 같이 살았음. 왜냐하면 그 애라도 없으면 외로워서 자살할것 같았거든.

 학과는 이미 소문이 퍼질데로 퍼져서 다들 나 똥개 쳐다보듯이 쳐다보고 도저히 과생활 못하겠다고 판단해서 들었던 동아리, 톡방 다나감. 그 날 저녁에 담배피면서 고딩때 사귄 친구 1명이랑 전화를 했었는데 그 친구가 고딩때 애들이 나 많이 안좋아했다고 알려주더라. 전화를 끊고 과거를 쭉  한번 돌아보니까 내가 인생을 많이 잘 못 산 것 같드라고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러지 말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서 카톡, 페북 다 탈퇴하고 연락처도 가족이랑 같이 살던 친구 빼고 다 지웠음.

그렇게 2학기도 종강 시기가 다가오고 그 친구는 집이 가난해서 더이상 음악을 못하겠다고 판단해서 먼저 내려가보겠다고 하더라. 어차피 종강까지 3주밖에 안남아서 알겠다고  하고 보내줬음. 그때 눈내리는 겨울이었는데 이새끼가 패딩이 없다고 내 패딩 쫌 빌려달라고 함. 근데 나도 패딩이 1벌밖에 없었음. 근데 이 친구가 내려가면 바로 보내겠다고 좀 빌려달라 하드라 하는 수 없이 빌려줬음. 근데 얘가 10일이 지나도 안보내는거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엄마한테 말해서 좀 받아달라 했는데 알고보니 이 놈이 내 패딩이 좋아서 계속 안보내고 있었던거임 이 새끼가 진짜 흙수저여가지고  괜찮은 패딩도  없었음. 내꺼는 되게 좋은 거였거든. 그래서 돌려주기가 싫었던거지. 내가 패딩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그때 진짜 엄청난 배신감이 느껴지드라. 내가 얼마나 많이 도와졌는데 이따위로 구니까. 전화도 안받길래 카톡으로 욕 ㅈㄴ 밖고 그 새끼랑도 연 끊었다. 그렇게 종강하고 내려가는데 진짜 20년 인생 헛 산 것 같드라.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무시당하면서 공부에 매진했나 싶드라고. 

2학년은 휴학하고 집에서 며칠간 폐인같이 살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음. 어렵게 구한 알바라 짤리기 싫어서 ㅈㄴ 열심히 일했음.
일이 무척 힘들었는데 니네가 생각하는 전단지 나눠주는게 아니고 전단지 2000장씩 가방에 넣어 가지고 경비 몰래 아파트나 동네같은데 돌면서 집집마다 붙히는거였음. 주6일에 아침9시부터 저녁6시까지가 기본이고 심심하면 야근이었음. 그래도 아랑곳 않고 계속했음. 이거라도 안하면 우울증때문에 너무 괴로웠으니까 적어도 일하는중에는 다 잊을 수 있었으니까. 4개월을 일했는데 일이 워낙힘드니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음. 경비한테 욕먹고 주민한테 욕먹고 동사무소 직원, 상가 주인등 골고루 욕먹었음. 전단지 붙히지 말라고. 그래도 아랑곳 안했음. 고딩때부터 욕을 하도 쳐먹고 사니까 내성이 생기드라고 ㅋㅋㅋㅋ 그때 사장이 나를 정말 좋아했음. 아무리 일 시켜도 싫은 티 안내고  일도 안그만두고 오래하니까. 저녁도 자주 사줬는데 진짜 오랜만에 사람한테 이런 대우 받으니까 쑥쓰럽더라. 그때 내 생활은 일-피방-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이 나쁘진 않았음.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긴 했어도 걱정거리가 없었거든.

 그러다 군 입대 날짜가 다가와서 군입대를 했음. 과에서의 일이 트라우마로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 당시 동기들이랑 딱히 친해질 생각도 없었음. 근데 거기서는 전우조라고 항상 조끼리 다니는게 있었는데 전우조를 하면서 동기들이랑 많이 친해졌음 그리고 군대에서는 상담이런거 많이 하잖아. 나도 간부님이나 상담원이랑 많이 했는데 다들 나 위로 해주시고 그 과새끼들이 나쁜거라고 말해주시드라 그게 당시 나한테 큰 위로 였다. 진짜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어지더라. 그 후 자대가서 과동기한테 전화해서 과에서 내가 느꼈던 심정들 다 얘기했다 그 애가 나보고 그러더라 미안하다고 그후 과에서 일은 더이상 신경안쓰기로 했다. 오히려 그 일로 배운것도 많았다. 사회성 제로인 내가 그 일 이후로 조금은 사회성이 생긴것 같았거든. 대학교랑은 다르게 군대 선임들하고는 잘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 인생 이야기임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ㅅㅂ 손아프네

IP :

자유게시판

<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