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얼- 한국경제사의 재해석 독후감 2편

가람휘 | 2020-06-06 22:04:51 | 조회 : 165 | 추천 : -


글쓴이가 볼 때도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20년 내에 경제성장률이 하락했을 거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박정희부터 이어진 고속 성장은 분명히 박정희와 휘하 관료들이 꽤나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독후감에는 쓰지 않았지만, 책 내용에도 박정희 정부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언급하며 관료 체제의 순기능을 살펴본다. 그럼에도 이같이 계속 이승만 정부의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민간 영역을 강조하기 위한 지은이의 사상이 반영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글쓴이도 이에 동의한다.

 

한편, 공업화 여부에 관해 살펴봐도 비슷하다. 1955~1960년 제조업 생산지수는 47에서 100으로 증가했고 1960년에서 1965100에서 180으로 증가했다. 부가가치 증가율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1955~196011.7%에서 1960~196513.7%이다. 실제 제조업체수, 종업원 수도 증가하였다. 1955년에 8800, 20만 명에서 196418700, 37만 명으로 증가했다. 도시화도 1955~1960년 연 평균 5.9%P, 1960~19665.7%P 증가했다. 한반도 전쟁이 끝나고 50년대 중반부터 계속 근대 경제성장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의 공업화는 수입대체 공업화였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지표도 1950년대는 GDP 대비 수출 비중이 2~3%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1962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업들의 수출 의지가 없었다기 보다는 유인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50년대 중반에는 대외원조를 가지고 내수 필수재를 생산하다가 전후복구 이후 원조로 인한 과잉생산 문제에 부딪혀 수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방직산업이 그 예시라고 볼 수 있음. 따라서 이는 기업의 생산능력 증진에 따라 수입 대체에서 수출지향으로 발전한 것이고, 박정희 정부가 아니었어도 저절로 수출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 외에 수출 진흥책을 살펴봐도, 이승만 정부 때 이미 상당수 도입된 것들이다. 무역법, 수출보조금, 수출입연동제로 수출 많은 기업에 수입권한 부여, 무역금융 등이 사례다. 이것의 실효성을 검증 하지 않고 그냥 수출 증진정책이 1960년대 갑자기 효과를 발휘했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글쓴이가 볼 때도 만약 우리가 이승만 시기에 올바른 정책을 쓰지 않아 최소한의 자본 축적도 해놓지 못했다면, 원조해외차입에도 불구하고 원시자본이 부족해 가난의 덫(자본이 부족해 소득이 증가하지 못하고 소득이 없으니 자본이 축적되지 못함)에 빠져 박정희 정부는 남미의 군부독재와 같은 비극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한민국 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1) 해방 이후 지속된 근대 경제성장은 한국 전쟁 직후부터 시작되었음. GDP, 전력 생산이 이를 뒷받침함. 1950년대가 경제침체기라는 주장은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했다. 2) 산업화도 1950년대 진행되었음. 산업 생산지수, 기업 공장 근로자 수는 1960년대 전반과 거의 동일한 것을 볼 때 1950년대 한국 제조업은 빠르게 성장했음 3) 1950년대 산업화와 근대경제 성장의 중요 계기는 원조(ODA), 정부의 보호무역, 수출진흥 정책임 4) 한국은 1950년대 극심한 무역 적자국이었기 때문에 수입대체와 수출 촉진을 동시에 추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4년 수출진흥 종합시책에서는 수출용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했으나 다음해부터 중간재 직접 생산으로 방향을 틀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8년 시책에서는 소재, 가공원자재 국산화 추진을 명시해 구체적 품목까지 열거했다. 한국은 무역 세제도 중간재 직접 생산을 촉진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명목 보호율이 실효관세보호율보다 높아 역진적구조로 중간재 생산을 촉진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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