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근 -철학으로 비판하다 2편

가람휘 | 2020-05-24 22:16:10 | 조회 : 165 | 추천 : -


한국 학계가 아닌 사회 비판으로는 공리주의 비판이 있다. 공리주의를 공공의 복리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공리는 이익을 꾀한다는 뜻이다. 글쓴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이익주의, 효율주의로 번역되어야 했다. 공리주의 사상은 1명만 괴롭고 나머지 사람들이 행복하면 그게 도덕적으로 옳다 생각하는 철학으로서, 실질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개인의 권익을 크게 침해하는 결과를 일으킨다. 한국 학교에서 유독 왕따 문제가 심하게 일어나는 것은 공리주의 때문이다. 왕따 문제에 효용주의(공리주의)가 근저에서 작용한다는 주장은 새롭고 유효하지만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심각한 수준의 학업 경쟁, 청소년에 대한 처벌의 부재, 담임 교사의 책임 회피, 청소년이 욕구 해소 공간 부족, 맞벌이에 따른 부모와의 애정 형성 애로,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왕따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노장과 유교 사상으로 넘어가면, 지은이에 따르면 노자의 무용은 쓰임이 없음이 아니라 없음이 쓰는 것이다. 경제학으로 말하면,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 곧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노자, 장자가 살던 시기에 군주의 간섭은 국방, 사회 간접 자본의 구축 등을 의미하기보다 대부분 재산권의 침탈, 생명권의 침탈을 의미했으니 저렇게 주장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무위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낱말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 없이는 개인의 자유가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위, 무용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변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대마다, 공간마다 그 환경에 맞춰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 수단이 없다면 폐기해버리는 것도 답이다.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폐기되어야 할 대표적인 개념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필연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혈연중심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실제 황제 주위 제후국은 모두 황제와 혈연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는 서양과의 큰 차이점이다. 플라톤에게 국가는 핏줄이 배제되면 될수록 이상적이었다면, 공자에게 국가는 핏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는 핏줄을 통한 지배관계가 성립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더 이상은 사회의 안정에 아무런 기여를 줄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은 가족 이기주의의 폐해가 꽤나 큰 나라라는 점에서도, 혈연중심의 가치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동서양 엘리트의 인식관 차이도 강조한다. 조선 엘리트의 도덕관도 중세 서양과 크게 달랐다.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직역하면 귀족성은 의무를 지운다는 뜻으로 약자에 대한 의무감을 강조했다면, 조선 시대의 양반의 선행은 자신에 대한 자긍심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이렇게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인데 왜 그런 일을 하는가와 같은 것이다. 경주 최씨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주자학의 내면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면수행을 인정받는 자로서 나 양반은 자긍심을 가지고 백성을 돕는다는 의미다. 반면에 양반은 효가 더 강조되긴 했지만, 왕에 대해서 충이라는 의무감을 가졌다. 서양의 신하는 왕과 계약 관계였던 점에 비춰보면 정말 대척점에 서있는 철학이라고 보인다. 글쓴이가 볼 때는 한국에서 자선이나 기부가 호의이자 자의적인 것, 즉 내가 원할 때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점을 볼 때, 여전히 약자에 대한 의무감이 강조되는 서양의 관념보다는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양반의 자긍심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이 이외의 내용에 관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노장 사상에 관한 내용들은 지루하고 덮고 싶었지만, 전체를 돌이켜보면 읽어서 후회할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국 인문학계의 현실에 대해서 톺아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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