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우스 - 명상록 1편 [2]

가람휘 | 2020-05-17 17:08:20 | 조회 : 252 | 추천 : -


제목: 지금, 여기서 다시 운명을 바라보자

 

이 글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해석한 점을 정리한 것이다. 명상록은 로마의 5현제 중 아우렐리우스가 지은 작품으로,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담고 있긴 하면서도, 현존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영원함을 지향하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을 방법으로 하는 실천인 것 같다. 명상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레비나스 철학도 읽힌다. 묘한 수필이다. 어쨌거나 아우렐리우스의 평정심은 그 자신이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황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권력기반이 강했다는 의미다. 똑같은 성품을 지닌 다른 황제들은 근위대에 의해 끔살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끔살을 당했든, 당하지 않았든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점은 분명하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은 이성을 감정의 우위에 둔다. 인간의 이성은 사고(정신)를 통해 발현된다. 감정은 감각(육체)를 통해 발현된다. 이성은 선을 담보하지만, 감정은 선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성을 통해 무지를 깨치고 선함, 타인에 대한 의무로 나아가지만 감정을 통해서는 무지를 깨칠수 없고 선악의 시비를 판단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신은 우리에게 이성, 감정을 모두 주었으니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성이 신의 속성이기에, 이성을 따르는 것이 옳다.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고통과 쾌락을 초월하여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이성을 닦아 비추는 것 말고는 불가능하기에 그러하다. 선을 추구하는 자에게 명예, , 권력은 모두 무의미하다. 오직 남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의무와 운명에 대한 순응뿐이다. 지금, 여기서 타인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구도자의 기쁨이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보답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거나 도움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댓가를 바라는 것은, 마치 눈이 보는 것에 대한 댓가를, 발이 걷는 것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이유에서 어떠한 사람을 믿을 수 없다거나 은혜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경우에 그 비난의 대부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신의를 지킬 것으로 믿은 것도, 또 그에게 친절을 베풀고 당연히 그 친절의 보답을 기대한 것도 너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이성은 미래, 과거를 통찰하는 것이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한 도구이다. 인간은 지금 살고 있는 순간 이외의 삶을 누릴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현존(실존)주의인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 현재는 현존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초월을 준비하는 죄 많은 속세이다. 초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만 사소한 모든 것에서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즉 무의미의 축제 혹은 현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통찰력이 주어진다. 초월할 준비라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이성이 명령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확신과, 그리고 자신의 운명은 신이 당신에게 내려준 것임을 확신으로 얻어진다. 초월을 노력하는 가운데서 최상의 마음의 평화, 평정심을 지니게 된다. 평정심을 얻은 자는 세상이 운명에 의해 흘러감을 인지하고 세상에 불평하지 않게 된다. 우주가 당신에게 던진 그 일은 당신을 위한 처방이며, 개별적으로 보이는 일이라도 우주의 법칙에 따른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며, 자연은 우리가 불평하는 대상을 자신 속에서 변화시켜 다시 새로운 창조의 재료로 삼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평정심을 지니게 되면 만물의 변화가 순환임을 알게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평정심을 얻은 자는 어디에 있든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의 내면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보금자리 속에서 지금 나 자신의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게 되고 이렇게 자신을 성찰하며 거듭나게 된다. 이 외에도 다른 사람의 일이 공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게 되고 홀로 구도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일에 부딪치면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게 되고, 이 고통을 슬기롭게 견디어 내며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고통이라는 가로막는 장애물은 오히려 앞으로 전진 하는데 촉진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주위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혼란되었을 때에는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재빨리 자제심을 회복시켜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특히 국가가 실제 해를 입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결코 그 원흉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화를 내는 대신 어떤 생각이 그를 그러한 행동으로 인도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회에서 원흉을 탓하며 잦은 갈등이 일어나게 되어 혐오와 고립이 반복되면 유대는 약화되고 타인에 대한 의무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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